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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인간중심 상담 - 칼 로저스

by 우-주 2024. 9. 18.

1902년 미국중서부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난 칼 로저스는 1924년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치료자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8년부터 10년간 뉴욕 로체스터 '아동범죄를 예방하는 모임의 아동연구부'에 참여하였고, 1940~1945 임상 심리학교수, 1957년 위스콘신 심리학과 정신의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1. 인간중심 상담의 배경과 발달

1단계 : 비지시적 접근(1940년대 이론)

'문제아의 치료'라는 책이 인정받으면서 1940년대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초빙되었다. 1940년 심리치료의 새로운 개념이라는 강연을 통해 임상적 상담접근에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비지시적 접근은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장을 원조한다는 입장이다. 비지시적 치료가 일반에게 알려졌으나, 비지시적이라는 단어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치료자 태도를 연상시켜 오해와 비판을 받았다.

2단계 : 내담자 중심치료(1950년대 이론)

1945년 시카고 대학에서 상담센터를 개설했다. 이 시기에 중요한 저서, 논문을 지속적으로 발표하였다. 비지시 기법에 내포된 상담자 태도를 강조한 내담자 중심치료로 명명했다. 1957년 상담이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치료적 인격 변화에 필요한 충분조건을 제시하였다. 이 시기에 재담자 중심 치료의 윤곽이 완성되었고, 건설적인 성격변화를 위해 필요한 6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3단계 : 내담자 중심치료의 심화(1957년 ~ 1960년대까지)

1957년 위스콘신 대학 정신의학의 겸임교수를 역임하였고, 이 시기의 연구에는 3가지 흐름이 있다. 내담자 중심치료의 대상이 부적응, 신경증 증상의 환자로 정신분열증 환자에게도 이 접근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증하였다. 상담 중 내담자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경험과정에 대한 연구, 내담자 중심치료의 견해를 일상적인 원조로 교육하였고, 집단에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4단계 : 인간중심접근(196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대학개혁 및 체제 비판이 활발해지면서 인간성 회복운동을 진행하였다. 1968년 인간연구센터를 창설하였고, 1968년 집단의 기록영화 '자기로의 여행'을 제작하였다. 이후 인간중심 접근 워크숍을 진행하고 세계 각국에 이론을 알렸으며, 1987년 85세로 사망하였다.

 

2. 실존주의와 인본주의

실존주의, 인본주의라는 두 용어 간의 관계가 혼재되었다. 

공통점으로는 정신분석과 행동주의에 반발하는 제 3세력이라는 점, 현상학적 강조, 내담자의 주관적인 경험과 개성을 존중한다는 점, 긍정적이고 건설적이며 의식적인 선택을 할 수있는 내담자의 능력을 신뢰한다는 점, 자유, 선택, 가치, 개인의 책임능력, 자율성, 목적, 의미같은 개념을 강조했다는 점, 기법의 역할보다는 진정한 만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으로는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이 실존적 불안에 직면한 존재라고 본 반면,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을 실현시키고 그를 통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타고난 잠재력이 있어서 불안을 덜 경험한다는 긍정적인 입장라는 것이다.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은 세상에 피투된 존재로 본질적 의미가 없는 세상 속에서 정체감을 창조하기 위한 선택을 하는데 따르는 불안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으로 실존상황인 죽음(유한성), 고독(분리성), 무의미(무근거성), 자유(불확실성) 등을 주로 다룬다. 예를 들어 인간은 '무'이고, 중요한 내적인 '본질'도 없고 매 순간마다 이들 조건을 만드는 선택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인본주의자들의 이야기는 예를 들어 도토리가 어떻게 자라는가? 적다아한 조건만 주어지만 참나무로서의 자기실현을 향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동적'으로 성장한다고 본다. 인간중심접근의 근간을 이루는 인본주의는 성장을 유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태도와 행동을 중시한다. 최근 많은 실존 상담가들은 자신을 실존적 인본주의자라고 칭한다. 뿌리는 실존주의 철학에 두되, 인본주의 심리치료의 여러 측면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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